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/일화 (문단 편집) == 패튼 장군의 사과 == [[미군]]의 [[조지 S. 패튼]] 장군이 [[북아프리카 전선]]에 부임했을 때 일이다. 패튼 장군은 미군이 이탈리아군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부하들에게 "이 멍청한 놈들! 져도 어떻게 이탈리아군에게 지냐? 니들이 그러고도 남자냐?"라고 질책했다. 하지만 부하들의 항변에 패튼 장군은 곧바로 사과했다. 부하들은 이렇게 말했다. > '''장군님! 우리들이 상대했던 이탈리아군은 그냥 이탈리아군이 아닙니다! [[베르살리에리]] 부대와 이탈리아 육군 제132 [[아리에테]] 기갑사단이었습니다!''' ||베르살리에리 부대는 [[에르빈 롬멜|롬멜]]조차도 자기 휘하 부대들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했으며, 아리에테 기갑사단은 토브룩에서 영연방군을 탈탈 털어버린 전적이 있다. 두 부대 다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서 인정 받은 정예부대였다. 베르살리에리와 제132기갑사단 둘 다 편제를 변경하여 현재까지 존속중이다. || ※ 이 문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, 이 에피소드 또한 출처불명의 주장이며 미군이 이탈리아군에게 참패한 것은 북아프리카 최악의 데뷔전이었던 1943년 2월 19일부터 24일까지 벌어진 카세린 협곡 전투이다. 패튼의 전임자인 로이드 프레덴달 소장이 지휘하는 미 제2군단 산하 제1기갑사단은 로멜의 북아프리카 군단에게 포위 공격을 당하여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. 그러나 이 전투의 주축은 독일 2개 기갑사단이었다. 또한 참전한 이탈리아군은 제131센타우로 기갑사단이었다. 아리에테 기갑사단은 이미 앞서 벌어진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괴멸하여 탈출에 성공한 극소수의 잔존병력은 센타우로 기갑사단에 합류했다. 패튼이 부임한 것은 이 전투 직후이며 불과 꼭 한달 뒤에 벌어진 엘 게타르 전투에서 로멜은 패배했고 센타우로 기갑사단 또한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. 잔여병력은 제16보병사단 피스토이아에 흡수되었다. 한마디로 패튼은 그런 질책을 할 필요가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